보통인의 우아함/영화 12

[영화] 드림팰리스

영화를 보면서 나는 중대 재해 희생자의 가족이 되었다가, 전세 사기 피해자가 되어 보기도 하고,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지켜보기도 했다. 끊이지 않고 벌어지는 사건들을 기사로 읽으며 안타까워 하다가도 점점 무뎌져 가고 있었는데 영화를 통해 간접 경험을 하면서 답답함과 생생한 아픔을 체험했다. 왜 우리 사회는 약자를 보호하지 않고 오히려 약자들끼리 서로를 헐뜯고 공격하게 만드는 것일까. ㅜㅜ 일터를 안전하게 하는데 소홀하여 노동자가 다치거나 죽었다면 기업주가 책임을 지는, 너무나도 당연한 내용을 법제화하는데 그렇게나 오랜 시간과 에너지가 들었는데 과연 제대로 동작하고 있는 걸까? 하청의 하청의 하청 구조로 책임을 떠넘기는 쪽으로만 수법이 발전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 법이 제대로 지켜져서 책임자들이 무겁게..

아이

2021.2.23 @롯데시네마 건대입구 김향기 배우가 그려내는 소심하면서도 섬세한 캐릭터들이 좋아, 이번 영화도 보게되었다. 태어나면서부터 늘 곁에서 지켜주신 부모님과, 경쟁자에서 동반자로 거듭나는 나의 형제들. 함께인 것이 당연해서 종종 소중함을 잊기도 했었는데, 아무도 없이 홀로 버텨내는 이들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워 눈물이 났다.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상의할 사람도 도와줄 사람도 없는 그 막막함이란 어떤 것일까? 다행히도 보호 종료된 고아와 술집에서 일하는 미혼모가 서로에게 기대면서 영화는 끝난다. 본인도 어디 하나 의지할 곳 없으면서 '내가 도와줄게요.' 하고 손을 내밀 때, 나도 눈물이 나고 그 손을 맞잡고 싶었다.

세자매

2021.01.27 @롯데시네마 월드타워 영화를 보는 내내 답답하고 궁금했다. 도를 아십니까를 따라가 한복을 입고 절까지 하는 첫째는 왜 그렇게 모두에게 미안하고 죄송한건지. 돈만 갈취해가는 남편이나 신경질만 내고 남자만 쫓아다니는 딸에게도 왜 그렇게 쩔쩔매고, 큰소리 한번 못내는건지. 남들 눈만 신경쓰느라 가족들과 자기 자신까지 억누르기만 하는 가식덩어리 둘째. 뭐가 문제인지 맨날 술만 먹고 착한 남편에게 소리만 지르는 셋째. 영문을 모르고 보니 그 어둡고 음습하고, 악다구니 쳐대는 장면장면에 점점 숨이 막혀왔다. 뒤척이며 한숨을 내쉬던 마지막 부분에서, 문제의 근원에 이번에는 제대로 악을 쓰고 분출하는 세자매. 이 한번에 후련함을 위해서 앞선 장면들을 차곡차곡 쌓아왔구나 싶었다. 나름 주름진 가정사를..

아무도 모른다

저번에 봤던 "마더" 이후로 본 일본영화인데 여기도 몹쓸 엄마가 나온다. 여러 남자와 동거와 출산, 이별을 반복하며 얻은 네명의 아이와 살아가는 엄마가, 급기야 아이들을 버려두고 집을 나간다. 차라리 돌아온다고나 하지말지.. 학교에 다니지 않는 것은 물론 집안에 숨어 지내는 것이 익숙한 아이들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로.. 또 발견되지도 않은 채로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일본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사건을 모티브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런 일이 드물어서 이런 영화로도 만들어지는 거겠지? 우리나라에도 어린이 학대 사건이 자주 뉴스에 나오는데,, 모든 어린이들이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으면 좋겠다. 책임도 못질 아이들을 낳아놓고 방치하는 어른들!! 출산율도 낮은데 한명 한명 모든 아이들 좀 소중하게 키..

조제

원작인 일본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예전에 이미 봤던 영화다. 정말 오래전이라 영화관에서 봤는지 다운로드 받아 컴퓨터로 본건지도 잘 기억나지 않고, 세세한 디테일도 기억나지 않는다. 보는 내내 해피엔딩이었으면 했던 남녀주인공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헤어졌다는 내용만이 기억에 남아있었다. 뭔가 특별한 사건이나 계기가 아니라, 어쩌다 만났듯이 또 어쩌다 헤어지는.. 어쩌면 이유도 필요없을 만큼 너무도 현실적인 엔딩이 살짝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그래, 평범한 사람들도 헤어지며 끝나는 연애가 더 많을 것인데 뭘 기대했던건가. 그랬던 영화가 한지민, 남주혁 주연으로 제작되어 개봉했다. 둘 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이기도 하고 여기서도 같은 결말로 끝나는 것일까 궁금해서 꼭 보고 싶었다. 영상미가 빼어난..

긴장감있게, 몰입되는 영화를 보고싶어 고른 '런' 영화 시작 전에 너무 잠이 몰려와서 잠드는거 아닌가 걱정했는데.. 과거에 출생 후 위기에서 간신히 살아난 아기를 보여준 후, 바로 시간을 점프에 사건으로 넘어간다. 포스터에서부터 수상해보였던 그 여인이, 간신히 살아나 온갖 질병에 시달리는 딸을 너무나 헌신적으로 보살피는 엄마였던 순간부토 대략의 스토리는 예상이 됐다. 그래도 영화 내내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게 되는, 오던 잠을 어느새 쫓아버린 영화였다. 하반신 마비인 딸이 이웃도 없는 외딴 곳에 있는 집에서, 전화도 인터넷도 이용할 수 없는 상황. 서울이었다면 창문을 여는 즉시 옆집 사람과 대화가 가능했을 텐데. 혹은 층간 소음을 유발하면 아랫집 사람이 당장 찾아왔을 것이고. ㅎㅎ 그러나 이곳은 미쿡 어..

내가 죽던 날

아무도 안 구해줘.. 니가.. 너를.. 구해야 돼.. 인생은.. 니 생각보다 길어... 모두가 사라지고 홀로 남은 세진이, 그렇게 희망을 포기하고 받아들이려 했을 때. 순천댁이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쥐어짜가며 세진에게 스스로를 구하라고 말한다. 보통 인생은 짧으니 하고싶은 걸 하라, 정도의 말들이 더 흔했던 것 같은데. 그렇게 짧다면 짧은 인생이지만 또 포기하고 끝을 기다리기에는 영원처럼 길게 느껴지는 것이다. 누군가 자신을 구해주기를 기다렸을 순천댁. 농약을 마시고도 죽지못해 그저 이어나가는 삶이 얼마나 모질게 길었기에 세진을 손을 붙잡고 그렇게 간곡하게 말했던 것일까. 여러가지 분위기로 무겁고 비극적인 영화일거라 짐작했었는데, 세진과 현수가 용기와 희망을 얻고 다시 일어서는 것으로 마무리 되어서 좋았..

마더

감독 오모리 타츠시 주연 나가사와 마사미 이보영이 주연했던 tvN 드라마 '마더',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재밌게 봤던 드라마와 제목이 같다. 그 드라마도 일본 드라마가 원작이라고 들었던 기억이 나서 넷플릭스에 뜬 '마더'를 보게 되었다. 딱 첫장면만 빼고.. 러닝타임 내내 물없이 고구마를 삼킨 기분으로 간간히 욕을 섞어가며, 설마 이렇게 끝나는건 아니겠지, 아니겠지 하면서 보았다. 정말로 이렇게 끝나버린 반전!! '철없다'는 단어는 너무 귀여워서 쓸 수 없을 만큼, 주변 사람들 등골을 뽑아먹으며 아~무 생각없이 하고싶은 대로 살아가는 저런 엄마가 있냐. 똑 너 닮은 애 낳아서 고생해봐라! 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엄마였는데, 보살같은 애를 낳아가지고는.. 부모 형제도 등돌려 버리자 아들에게 의지하면서 계..

젊은이의 양지

영화를 보는 내내 백 번쯤의 한숨이 나왔다. 폐가 발바닥까지 내려간 것처럼 마음이 무겁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처음 이력서를 써서 내보고, 귀하의 자질은 훌륭하나 이번에는 아쉽다는 탈락 문자도 받아보고. 한 시간도 안되는 면접 시간에 온 몸에 힘이 쭉 빠져 밥보다도 얼른 이불속에 숨어 잠들고 싶었던 시간들. 그 무거웠던 마음이 기억이 났다. 영화는 몇 배나 더 무거웠다. 화장실 갈 시간이 나지않아 기저귀를 차고 근무했다는 이야기는 기사에서 읽었던 적이 있다. 어머나, 하고 지나갔었을 이야기가 화면으로 보니 엄청 충격적이었다. 규정이 지켜지지 않아서, 사람보다 돈이 더 중요해서 지하철에서 공장에서 하나 둘씩 죽어가던 사람들 소식에 언제부턴가 익숙해져가고 있었던 것 같다. 언제쯤 이렇게 죽지않고 모두가..